도시 뒤에 숨은 군단
비미나키움과 제7대 클라우디아 군단: 로마의 다뉴브 군단
레기오 VII 클라우디아 군단이 300년 이상 이 요새를 지키며 이곳을 모이시아 수페리오르의 수도로 성장시켰고, 자체 주화를 주조하기도 했으며, 마침내 서기 441년 훈족에게 함락되었습니다.
GetYourGuide에서 비미나키움 여행 상품 보기 ↗다뉴브 강변의 요새, 행군하는 군단을 위한 성채
비미나키움은 다뉴브 국경을 지키는 군단 기지로 시작되었으며, 로마의 북쪽 접근로를 감시하는 수비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원래 달마티아에서 창설된 제7 클라우디아 군단은 기원후 58년경부터 이곳에 배치되어 거의 3세기 반 동안 다뉴브 강 이 구간에 머물렀는데, 이는 로마 국경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단일 군단 최장기 주둔 기록입니다. 요새는 믈라바 강이 다뉴브 강과 합류하는 지점, 즉 발칸 반도로 통하는 수로와 국경을 따라 이어진 도로망이 만나는 교차로에 자리 잡았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로마가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6천 명의 군인, 그리고 그 주위에 수만 명이 더 있습니다
군단 주둔지 자체에는 약 6,000명의 병사, 즉 완편 군단 하나가 주둔했으며, 그 옆에서 성장한 민간 도시에는 약 3만에서 4만 명의 주민이 살며 군대와 교역하고, 물자를 공급하고, 병사들과 혼인하기도 했습니다. 다뉴브 강변에 자리한 비미나키움은 2세기 초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원정 당시 병력과 보급품이 강을 건너 다키아로 진군하기 전에 집결하던 전초 기지 역할도 했습니다. 주둔지와 민간 도시가 결합된 이 구조 덕분에 비미나키움은 로마 발칸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심지 중 하나로, 훨씬 더 유명한 속주 수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곳은 규모에 비해 가장 적게 찾는 로마 도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치하에서 야영지에서 속주 수도로
수십 년 동안 비미나키움은 공식적인 도시 헌장을 받지 못한 채 군사 전초기지와 그에 딸린 민간 정착촌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서기 117년경 이곳에 무니키피움 지위를 부여하면서 바뀌었고, 이후 더욱 승격되어 상부 모에시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도 위의 수비대 도시가 아니라 속주 총독의 소재지이자 지역 전체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기에 총독의 권한은 민정과 실질적인 군사 지휘권을 겸비한 것이었으며, 이는 로마의 다뉴브 국경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례없는 강력한 권력 구조였습니다.
군단 자체 조폐국
서기 239년, 고르디아누스 3세 치세부터 비미나키움은 자체 지방 청동 주화를 주조했습니다. 이는 실질적 위상을 지닌 도시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죠. 이 주화들 다수에는 황소와 사자가 양옆을 지키는 가운데 모이시아 수페리오르를 의인화한 여성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소는 비미나키움에 주둔한 제7 클라우디아 군단, 사자는 오늘날 베오그라드인 싱기두눔에 주둔한 제4 플라비아 군단의 문장 동물이었습니다. 조폐소는 트라야누스 데키우스와 갈리에누스를 비롯한 황제들의 치세를 거쳐, 약 251~252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와 볼루시아누스의 공동 통치 시기에 문을 닫을 때까지 운영되었습니다. 비미나키움 주화는 오늘날 슬로베니아와 북마케도니아에 이르는 먼 곳의 박물관 소장품으로 발견되며, 제국 전역의 교역로와 군대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파괴되고, 재건되었으며, 마침내 사라졌다
비미나키움의 흥망성쇠는 로마 제국의 운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441년, 아틸라의 훈족이 다뉴브 국경선을 따라 요새를 잇달아 무너뜨린 대대적인 원정의 일환으로 이 도시를 초토화했고,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6세기에 국경 재방어를 위한 광범위한 노력의 일부로 방어 시설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바르족이 580년대에 다시 도시를 파괴했고, 슬라브족이 이 지역에 정착한 후에는 다시는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수도가 이후의 역사에 흡수되지 않고 버려진 채 남았고, 그 덕분에 많은 유적이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할 때까지 지하에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 군단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것들
군단의 본부 — 프린키피움(principium)은 약 3,500제곱미터에 달하는 40개 실로 구성된 복합 건물로, 오늘날 발굴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며, 6,000명에 달하는 로마 군단의 일상적인 행정 체계가 남긴 가장 선명한 물리적 흔적입니다. 건물 자체를 넘어, 고고학자들은 지붕 타일과 벽돌에 찍힌 군단 약칭 도장을 통해 이 일대 전체에서 군단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이는 로마의 표준 관행으로, 발굴자들이 특정 구조물을 누가 건설하거나 수리했는지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게 해줍니다. 프린키피움에 서 있으면, 여러분은 바로 그 실질적인 지휘 본부에 서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7대 클라우디아 군단(Legio VII Claudia)이 거의 4세기 동안 다뉴브 국경 지대를 통치했습니다.